사라진 손바닥/나희덕

2024. 9. 27. 06:43시 읽고 쓰는 기쁨

 

☞ 혹여 겨울 연꽃 방죽을 가 보았는가?

화려함 뒤에 그 처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꼴불견이다. 

연못  가득 연줄기들은 꺾여 처박히고 검은 쭉쟁이 연밥은 동동 떠 다니고...

거기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시인은 얼마나 위대한 사고의 마법사인가!

먼 훗날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 먹을 수 있으려나"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요즈음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모두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반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출처: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문태준 해설/잠산 그림/민음사,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