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김기림

2023. 12. 20. 08:24시 읽고 쓰는 기쁨

☞20231218 꽁꽁 언 연못 위를 비상하는 고니, 단입제에서...

 

 

              길 / 김 기 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

려 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

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

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

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 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출처: 내가 사랑하는 시/최영미/해냄, 2009》

 

♣ 깊은 추억으로 빠져들게 하는 의미있고 아름다운 시이다.

나의 칠십 평생을 그 길 위에 펼쳐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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