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2. 10:01ㆍ독서노트
20240321 변산 해수욕장에서
해질녘 바닷가, 아직 차가운 바닷물 속을 맨발로 걷는 어느 노인의 모습ㅡ
'춥지 않냐고 하니, 아주 시원하다는 답변', 이분은 도인인가, 광인인가?

「니체, 문학과 철학의 두물머리/이동용 지음/휴먼컬처아리랑,2019」 중에서
ㅡ 위대한 정오란 사람이 짐승에서 초인에 이르는 길 한가운데 와 있고, 저녁을 향한 그의 길을 희망으로 찬미하게 되는 때를 가리킨다. 그 길이 곧 새로운 아침을 향한 길이기 때문이다. p131
ㅡ 신은 일종의 억측이다. 나는 이 억측이 너희가 할 수 있는 사유 범위 안에 한정되기를 바란다.
너희는 신을 사유할 수 있는가? 하지만 모든 것이 사람이 사유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너희에게 진리를 향한 의지를 의미하기를! 너희는 너희의 감각을 끝까지 사유해야 할 것이다. p143
ㅡ 니체의 철학은 레벤스필로조피Lebensphilosophie, 즉 생철학이라 불린다. 그 내용은 生, 즉 생명, 인생, 삶으로 채워져 있다. 레벤Leben은 동사를 명사로 만든 말이니 삶이 직역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라면 뭐가 됐든 관심거리가 된다. 삶은 오로지 생명에 의해 존재의 의미를 획득한다. 니체는 여기서부터 철학을 시작한다. 두 발을 땅에 붙이고서 먼 곳을 바라본다. 그의 철학이 의미를 상실하는 곳에는 언제나 생명이 사라진 곳이다. 생명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그는 허무함을 느낀다. 삶의 의미가 결여된 곳에서 그는 여지없이 돌아섬을 실천하고 만다. 여기 앉아 때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철학은 시작되고 있다. p167
ㅡ 수수께끼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중요해서 다시 반복한다.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내는 신화 속 인물로서 자신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괴물이다. 그의 질문은 간단하다.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게 뭐냐는 것이다. 정답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를 사람에게 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정답이 사람인 수수께끼를 사람에게! 사람에겐 목숨이 걸린 문제다. 이 신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런 게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모르면 살 가치가 없다고, 그래서 죽어도 싸다고. p231
ㅡ “생의 한가운데에서. - 아니다! 삶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삶은 희망의 원인이 될 뿐, 실망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말이 잠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삶에서 실망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비유는 다양하다. 바다, 사막, 심연, 허공, 미궁, 수수께끼 등이 그것이다. 바다는 마실 물 한 방울이 없다. 사막도 마찬가지다. 심연은 어둡기만 하고 바닥도 안 보인다. 바닥조차 없는 곳, 다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에겐 불행이 따로 없다. 허공은 추락과 몰락만을 경험할 뿐이다. 미궁에서는 길도 길이 아니다. 길 자체가 방황의 원인이 된다. 수수께끼는 온통 아리송한 소리들 뿐이다.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 들에서 가치를 전도시켜 내야 한다. 바다라면 항해를 하면 되고, 사막이라면 오아시스를 찾아내면 되고, 심연이라면 독수리의 시선을 가지면 되고, 허공이라면 날개를 펴면 되고, 수수께끼라면 당당하게 풀면 되는 것이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내면에는 늘 ‘천민’이 숨어 있어 절박하게 부르짖기만 한다. 늘 삶이 힘들다고, 늘 시간이 없다고, 늘 길이 안 보인다고, 늘 삶이 무섭다고 절박한 소리들만 쏟아낸다. 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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