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데 / 황동규

2026. 3. 4. 12:31시 읽고 쓰는 기쁨

 

☞ 20260304 매화 ㅡ 전주 인후공원에서

 

그게 뭔데 / 황동규

 

새로 만든 봉분에

눈 희끗희끗 앉다 말다 하는 곳에 그대를 남겨두고

머뭇머뭇대다 돌아가는 길,

아직 발에 땅이 제대로 닿는군.

 

왠지 모르게 자꾸 뒤로 물러서려는 능선과 능선 사이에

해가 못 박힌 듯 떠 있을 때

더 가꿀 무슨 추억이 있다고

생각에서 뭔가 더하고 뺄 수 있을까?

긴한 약속 잊었다 떠오른 사람처럼

바람결에 여기저기 눈이 벗겨지는 논두덩을 문지르듯 걸어

버스 서다 말다 하는 정거장으로 곧장 갈 수 있을까?

생각의 빈칸처럼 들판이 나타나고

지나치려던 버스가 마음먹은 듯 선다.

가야 할 곳 세상 어디엔가 박혀 있겠지.

차가운 버스 유리창에 입김 후 불었다가 손으로 지우며

혼잣말로, 이제 삶의 비밀은

삶의 비밀이 없다는 것이다, 라고 타이르듯 속삭인다.

마음이 튕긴다.

비밀? 그게 뭔데.’

 

☞ 이 시는 황동규님의 <그게 뭔데>의 전문입니다.

화자에게도 한때는 삶에 꿈도 희망도 낭만도 그리고 미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나이들고 늙어 사랑하던 사람도 떠나고 그간의 공과 사도 세월과 비바람에 닳고 바래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겨졌겠지요. 옥이야 금이야 하던 삶의 비밀? 그게 뭔데. 하고, 슬픔과 상심 속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 온 것 같네요. 空手來空手去거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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