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 장현숙
2026. 4. 11. 12:00ㆍ시 읽고 쓰는 기쁨
☞ 20260405 긴기니아 난꽃 ㅡ 집 베란다에서 키운 것인데, 晩時之歎!
10여년 만에 고운 향기를 품어낸다. 너무나 향그롭다, 거실 안까지 가득!


난 / 장현숙
고개 한번 숙이지 않는 날들이었는데
무릎 한번 꺾지 않는 날들이었는데
마른 잎 뒹구는 숲을 건너왔는지
붉은 사막의 한가운데를 맨발로 걸어왔는지
낯빛이 누렇게 변해간다
신경세포도 고름이 맺혔을 것이다
부속품 갈아 끼우듯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든 것만 하겠는가
메스를 들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지막 하는 것이 수술 아니던가
노란 링거 주머니 달아주고
날마다 손도 닦아주고
입술이 마르지 않게 물도 주었다
제법 푸른 기운이 도는 듯 하더니
검은 낯빛으로 성큼성큼
사해를 건너가는 것이 보인다
밤마다 위액 같은 비명을 토했을 것인데
깊은 눈빛은 잿빛 하늘을 수없이 들여놓았을 것인데
울컥거리며 붉은 노을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오빠도 이승의 뿌리를 후둑, 떨구고
그렇게 갔었다
☞ 난(蘭)의 이야기지만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로 치환된다.
산다는 것은 죽음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검은 낯빛으로 성큼성큼 서서이
그렇다면 '지금 여기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고 묻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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