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헤밍웨이

2023. 3. 22. 17:03독서노트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김욱동 옮김/민음사. 2017》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최후의 걸작 ㅡ '백조의 노래'「노인과 바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멕시코만을 배경으로 고기잡이 하는 한 늙은 어부가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탕만 치다가, 드디어 85일째 되는 날

에 먼 바다로 나가 3일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자신의 배보다 더 큰 청새치를 

낚아 항구로 돌아오는 도중에 서너 차례 큰 상어 떼를 만나 살코기는 모두 빼

앗기고 뼈만 앙상한 채로 귀항, 깊은 잠의 수렁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그토록 잡고 싶어 하던 대어를 잡고서 희망에 넘쳐 집으로 돌아오지만 결국은

앙상한 뼈만 남았다는 허무한 이야기이지만, 나이 들어서도 노령의 한계에 굴하

지 않고 열정으로 살아가는 한 어부의 당당한 삶을 통해, 일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실존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인간은 누구나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으며 거역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운명인 것이다.

   그러니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등의 태생의 실익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여기의 삶, 오늘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내일보다는 오늘이,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중시하는 생활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시 읽은 적이 있다.

   자식들의 성공하지 못한 삶이 주인공 세일즈맨의 잘못인 양, 이에 대해

주인공은 죄책감에 빠지고 보험금을 타 자식들의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교통사고를 가장한 죽음을 택하는 모습은 쇼킹한 사건,  바로 충격 그 자체었다.

   돈은 없어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비애와 허무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노인과 바다'의 주제는 그와는 다른 것 같아서 좋다.

일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노인의 성숙한 삶의 태도, 비록 대어를 잡고도  뼈만

앙상한 고기를 가지고 돌아왔지만, 이를 패배로 인정하지 않는 어부의 여유와 당당함

이라고 할까.

   인간의 운명에 저항하면서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실존적인 삶의 태도가 보기 좋았다.

 

   ㅡ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p104

 

   오늘날, 주인공 산티아고와 같은 또래의 많은 늙은이들을 보라.

   당당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상실감으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큰 사건에 연루되어 많은 고통을

당하고 살다 간 시인이지만 그의 시는 나에게 강한 희망의 메시지를 남겨주었다고 본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중에서

 

※ 이 책에 대한 다른 평가

ㅡ(늙은 어부는) 대어를 낚는 평생의 꿈을  이루었지만 실익은 없다는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그저 형체를 알 수 없는 앙상한 뼈 뿐인 한 마리 물고기가 아닌가.

그것은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고 현상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인상 깊었던 문장들 그리고 장면들

 

ㅡ 이 소설의 시작 부분으로 노인이 처한 현상황이 담담하게 묘사되었다.

   그는 맥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처음 사십 일 동안은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그에게 이제 노인이 누가 뭐래도 틀림없이 '살라오'가 되었다고 말했다. '살라오'란 스페인 말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로 옮겨 타게 되었는데, 그 배는 첮 주에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p9

 

ㅡ "내 나이가 자명종인 거지. 한데 늙은이는 왜 그렇게 일찍 잠에서 깨는 걸까? 하루를 좀더 길게 보내고 싶어서일까?" 노인이 대꾸했다. p25

 

ㅡ "그 애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도와줄 수도 있고, 이걸 구경할 수도 있을 텐데."

    늙어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있어서는 안 돼,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걸. 잊지 말고 저 다랑어가 상하기 전에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아무리 먹기 싫더라도 아침에는 꼭 먹어야 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돼, 하고 그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p49

 

ㅡ "저 놈이 이제 올라오고 있구나. 자, 손 친구야. 자, 제발 어서 정신을 차려." 그가 말했다.

    낚시줄은 서서히 올라오더니 배 앞쪽 수면이 부풀어 오르면서 마침내 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쉬지 않고 계속 올라오자 고기 주위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햇볕을 받은 고기는 번쩍번쩍 빛이 났고, 짙은 자줏빛의 머리와 등, 옆구리의 연보랏빛 넓은 줄무늬가 햇살에 드러났다. 주둥이는 야구 방망이만큼 길쭉하고 결투용 쌍날칼처럼 끝으로 갈수록 뾰쪽해졌다. 고기는 다이빙 선수처럼 온몸을 물 위에 드러냈다가 유연하게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노인은 커다란 낫처럼 생긴 꼬리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낚싯줄이 빠른 속도도 다시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p63~64

 

ㅡ "저에게는 신앙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고기만 잡게 해 주신다면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열 번씩이라도 외겠습니다. 만약 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코브레의 성모 마리아님을 참배하기로 약속드리죠. 정말로 약속합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p66

 

ㅡ "여보게, 고기 양반, 그래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 그는  큰소리로 물었다. "나는 기분이 좋다네. 왼손도 많이 좋아졌어. 오늘 밤과 내일 낮 동안의 식량도 갖추고 있지. 자, 친구, 어디 배나 끌어 보시지.

   실제로 노인은 정말로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낚싯줄을 멘 등이 통증의 수준을 넘어 거의 무감각 상태가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더 심한 일도 겪었는걸,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내 오른손은 조금 긁힌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이제 왼손의 쥐도 풀렸어. 두 다리도 끄떡없고. 더구나 식량 문제라면 저놈보다는 내가 훨씬 유리한 입장이고 말이야. (······)

   "하지만 이 늙은이야, 자네는 아직껏 한숨도 눈을 붙이지 않았잖은가."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반나절과 하룻밤, 또 하루가 지났는데도 잠 한숨 못 잤잖아. 고기 놈이 얌전하게 있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 궁리를 해야겠는걸, 잠을 자지 않으면 머리가 흐리멍덩해질지도 몰라."  p76~77

 

ㅡ 노인은 고기를 고물과 이물 그리고 배 중앙부의 가로대에 단단히 붙들어 맸다. 고기가 너무 커서 월씬 큰 배 한 척을 나란히 갖다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입이 열리지 않도록 그는 줄을 한 가닥 끊어 고기의 아래턱을 주둥이에 잡아맸다.  p98

 

ㅡ 마침내 한 마리가 마지막으로 고기의 머리를 향해 돌진해 오자 노인은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잘 뜯기지 않는 육중한 고기 대가리를 물고 있는 상어 대가리를 향해 손잡이를 내리쳤다.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상어의 골통을 계속 내리갈겼다. 손잡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조각난 끝으로 힘껏 상어를 찔렀다. 살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느꼈졌고, 부러진 손잡이이 끝이 뾰쪽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그것을 다시 한 버 깊숙이 찔러 박았다. 그러자 상어는 물었던 살점을 놓고 나뒹굴며 물러갔다. 그놈이 몰려들었던 상어 떼의 마지막 놈이었다. 뜯어 먹을 고기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았다.

   노인은 이제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고, 입속에 이상한 맛이 감돌았다. 구리 같은 들척지근한 맛이 느껴지는 순간 노인은 덜컥 겁이 났다. p120

 

ㅡ 노인은 돛대를 빼내고 돛을 감아서 묶었다. 그리고 나서 돛대를 어깨 위에 걸머메고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녹초가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되를 돌아보니 가로등 불빛에 고기의 커다란 꼬리가 조각배의 고물 뒤쪽에 꼿꼿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허옇게 드러난 등뼈의 선과 뾰쪽한 주둥이가 달린 시커먼 미리통, 그리고 그 사이가 모조리 앙상하게 텅 비어 있는 것이 보였다. p122

 

ㅡ "저게 뭐죠?" 여자가 웨이터에게 물으면서 이제 조류를 타고 바다로 밀려 나가기를 기다리는 쓰레기에 자니지 않는 그 엄청나게 큰 고기의 길쭉한 등뼈를 손으로 가리켰다.

   "티부론"이죠. 상어랍니다." 웨이터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상어가 저토록 잘 생기고 멋진 꼬리를 달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나도 몰랐는걸." 여자와 동행인 남자가 말했다.

   길 위쪽의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 p129 

 

☞ 어부들은 바다가 위험하고 

폭풍이 두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어떤 위험도 육지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 빈센트 반 고흐

   

 

☞20230322 화엄사 홍매ㅡ나도 이 화엄사 홍매처럼 늙어서도 주홍색 고운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